공부를 잘했는데도 ADHD일 수 있을까

“학교 다닐 때 성적이 좋았는데 ADHD일 리가 없다”는 말은 본인도 하고 의사도 가끔 합니다. 이 글이 답하는 질문은 학업 성취가 높았던 사람에게도 ADHD가 있을 수 있는가, 있다면 왜 그렇게 오래 드러나지 않는가입니다.

짧은 답은 이렇습니다. 있을 수 있고, 드물지 않습니다. 지능과 주의력은 다른 축이며, 높은 지능은 ADHD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가립니다. 그리고 가려진 상태는 구조가 사라지는 시점에 한꺼번에 드러납니다.

지능과 주의력은 다른 축입니다

ADHD 진단 기준 어디에도 학업 성취나 지능에 관한 항목은 없습니다. DSM-5-TR이 요구하는 것은 부주의 또는 과잉행동·충동성 증상이 아동기부터 있고, 여러 장면에서 나타나며, 기능에 지장을 준다는 것입니다. 성적이 좋았다는 사실은 이 중 어느 항목도 부정하지 않습니다.

지능은 문제를 이해하고 푸는 능력이고, 실행기능은 그 능력을 필요한 때에 필요한 곳에 쓰는 능력입니다. 둘은 상관이 있지만 같지 않습니다. 지능지수 120 이상인 성인 ADHD를 조사한 연구에서 73%가 작업기억·처리속도·감정조절에서 측정 가능한 손상을 보였습니다. 시험은 잘 보는데 과제 제출은 늘 늦는 사람, 이해는 빠른데 시작을 못 하는 사람이 바로 이 조합입니다.

성적이 좋았던 것은 오히려 “얼마나 많은 것을 동원해 그 결과를 냈는가”를 가립니다. 밤새워 벼락치기로 받은 90점과 계획대로 공부해서 받은 90점은 성적표에서 구별되지 않습니다.

보상전략이 증상을 가리는 방식

학업 성취가 높은 ADHD는 대체로 몇 가지 전략에 기대어 왔습니다. 마감 직전의 압박을 연료로 쓰는 것, 관심 있는 과목에 과집중하는 것, 뛰어난 기억력으로 노트 정리 없이 버티는 것, 실수를 막으려고 과도하게 확인하는 완벽주의가 그것입니다.

이 전략들은 학교에서 잘 작동합니다. 학교는 마감이 짧고, 평가가 자주 있고, 하루 일과가 정해져 있고, 부모와 교사가 구조를 대신 잡아 주는 환경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증상은 있지만 손상이 드러나지 않습니다. 진단 기준의 “기능 손상” 항목이 충족되지 않으니 아무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가려지는 증상가리는 전략드러나는 계기
시작을 못 함마감 직전 압박으로 몰아치기마감이 멀거나 없는 장기 과제
지속 주의 어려움관심 과목 과집중흥미 없는 필수 업무가 대부분인 직장
정리·계획 부족부모·학교가 일정 관리자취·대학원·프리랜서 전환
부주의 실수과도한 재확인(완벽주의)확인할 시간이 없는 업무량
감정 조절혼자 있는 시간에 회복육아·관리직 등 회복 시간이 사라짐

구조가 사라질 때 드러나는 시점

늦게 진단받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놀랄 만큼 비슷합니다. 고등학교까지 괜찮았고, 대학에서 조금 흔들렸고, 대학원이나 첫 직장 또는 첫 아이 이후에 무너졌다는 것입니다. 공통점은 외부 구조가 사라진 시점이라는 것입니다.

대학은 마감이 길어지고 출석 관리가 느슨해집니다. 직장은 흥미 없는 일이 대부분이고 누가 대신 일정을 잡아 주지 않습니다. 육아는 예측 불가능한 요구가 끊임없이 들어오고 혼자 회복할 시간을 없앱니다. 이런 환경에서는 벼락치기도 과집중도 작동하지 않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기능 손상이 나타나고, 본인은 “갑자기 무능해졌다”고 느낍니다.

이것은 새로 생긴 문제가 아닙니다. 늘 있던 특성이 보상전략의 한계를 넘는 환경을 만난 것입니다. 성인이 되어 진단받는 경로는 별도 글에서 자세히 다룹니다.

높은 성취가 평가를 늦추는 이유

높은 성취는 본인·주변·평가자 세 방향에서 평가를 늦춥니다. 본인은 “이만큼 해냈으니 문제가 있을 리 없다”고 생각하고, 어려움을 성격이나 게으름으로 돌립니다. 주변은 성취를 보고 어려움을 믿지 않습니다. “네가 무슨 ADHD냐”는 말은 이 지점에서 나옵니다.

평가자도 예외가 아닙니다. 선별 도구는 이미 드러난 손상을 묻기 때문에, 보상전략으로 손상을 막아 온 사람은 점수가 낮게 나옵니다. “자주 잊는다”는 문항에 알림을 다섯 개 걸어 놓고 잊지 않는 사람은 “아니오”라고 답합니다. 그 알림 다섯 개에 든 비용은 점수에 잡히지 않습니다.

그래서 평가를 받을 때는 결과보다 과정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어떤 결과를 냈는지가 아니라 그 결과를 내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 그것이 또래보다 얼마나 더 들었는지를 말하는 것이 평가자에게 필요한 정보입니다. 특히 여자아이의 ADHD가 늦게 발견되는 이유는 이 문제와 깊이 겹칩니다.

정리

학업 성취는 ADHD를 배제하는 근거가 아닙니다. 높은 지능은 증상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가리고, 가려진 증상은 구조가 사라지는 시점에 드러납니다. 성적이 좋았다는 이유로 평가를 미루고 있다면, “얼마나 잘했는가”가 아니라 “그것이 얼마나 힘들었는가”를 기준으로 다시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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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이 글은 일반적인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하며 의학적·심리학적 진단을 대신하지 않습니다. 자가평가 결과는 진단이 아니며, 일상에 지장이 있다면 정신건강의학과 등 전문가의 평가를 받으십시오.